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저는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본가인 경상남도 마산에 다녀왔습니다. 지방에서는 아파트 주민끼리 모르는 사이인데도 인사를 하는데 서울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는 그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1인 가구가 대다수인 청년의 입장에서 ‘아파트 단지’ 라는 공통된 공간을 공유하는 주거 공간에서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보니, ‘이웃’이라는 개념은 어느새 많이 낯설어졌습니다. 즉, 집 밖을 나서면 모두 ‘남’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실험 일지로 주변 세계를 넓혀가보니 오랜만에 ‘주거지’라는 개념에서 따뜻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실험은 주변의 동식물들에 대해 관찰하고 서로가 서로의 이웃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집 근처 나만의 이웃을 만들고 싶은 쿠키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5일간의 탐험 일지
Day 1: 일단 담아보자 출근 길, 일단 집 근처 공원의 ‘이름 모를 풀들’의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이 때의 ‘풀들’은 아직 이웃이 아닌 탐구의 대상, 즉 객체로서 존재했습니다. 퇴근 길 사진을 보니 궁금함 보다는 사진을 찍었다, ‘풀들’을 담았다라는 감상만 들었습니다.
Day 2: 천천히 다가가기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 때는 우리는 조심스럽습니다. 물론 친해지고 싶은 선한 마음만으로 관계를 시작할 자격은 충분합니다만, 상대방의 감정과 타이밍 등 관계를 시작할 조건은 분명 고려하는 편이 보다 안전합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도 한 순간의 호기심인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궁금함인지 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선 나의 궁금함을 자극하는 이웃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길을 오가며 이름이 궁금한 ‘이웃’을 눈에 담아 놓습니다.
Day 3: 인사하기 오늘은 드디어 어제 눈에 담아 놓았던 ‘이웃’에게 인사하러 가보기로 합니다. 첫째 날에 했던 사진 찍기는 잠시 미뤄두고 상대방을 파악하기로 합니다. 다행히도 어제 눈여겨 보았던 이웃에게 이름표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맥문동’ 5~6월에 연보라색 꽃이 피며 진녹색의 아치형으로 늘어지는 잎과 함께 관상 가치가 높은 백합과 식물입니다. 조금 더 관찰하고 난 뒤 이제는 이웃이 된 기념으로 사진을 찍기로 합니다.
Day 4: 두번째 이웃 두번째 이웃은 느티나무입니다. 나이가 최소 600백년은 된 이웃으로 이 근방 최고 어르신입니다. 600년 이라함은 세종 대왕님이 계실 적이며, 이 나무 옆에 정자가 있어 세종 대왕님이 쉬고 가셨다 합니다. 느티나무는 5월에 꽃이 피고 10월에 열매를 맺으며 그늘이 좋아 정자목으로 쓰기 위해 많이 심는 느릅나무과 나무입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답게 아낌 없이 배푸는 좋은 이웃입니다.
Day 5: 세번째 이웃 세번째 이웃은 참새입니다. 참새는 참새목 참새과 참새속에 속합니다. 참새는 텃새로 이동하지 않고 한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역시 터줏대감 이웃입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느티나무와는 정반대로 몸무게가 25g에 불과한 귀여운 면모가 있으며, 사람을 잘 무서워하지 않아 친해지기 어려운 편은 아닙니다. 저 역시 참새롤 보고 ‘사람을 무서워 하지도 않네’라고 생각했었지만 실험 일지를 진행하며 이웃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바라보니, ‘아 뭐 옆집 이웃이 옆에 앉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의 풀꽃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1’입니다. 이 시를 떠올리며 풀꽃을 바라보면 괜시리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깊게 보고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풀꽃은 2편과 3편도 있습니다. 그 중 2편의 첫 행은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로 시작합니다. 이번 실험 일지는 우리가 하나만 알고 둘은 잘몰랐던, ‘풀꽃 2’로 마무리합니다.
이름을 알고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하루에 단 3분,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주의 회복 이론에 따르면 하늘의 구름이나 색처럼 자연스러운 대상은 지친 '의도적 집중력'을 회복시켜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잠시 멍하니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창의적인 뇌가 활성화되고, 광활한 풍경에 나의 걱정이 작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굳었던 목과 눈의 긴장을 푸는 것은 덤입니다